‘조선통신사의 발자취를 따라서’평화의 참 의미를 되새기다
- 日本中部協議会
- 2021년 4월 25일
- 3분 분량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 일본중부협의회(협의회장 배정희)는 지난 4월 22일(금)~23일(토) 이틀에 걸쳐 평화통일 정책강연회 & 1분기 정기회의 및 ‘평화통일 원정대~조선통신사의 발자취를 찾아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코로나19 감염 방지 대책으로 일본 전역에 발령된 만연방지(蔓延防止) 등 중점조치가 해제된 후 열리는 첫 공식 행사였습니다. 이번 행사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살펴볼까요?
정기회의서 평화통일 정책강연과 2022년 활동계획 공유
4월 22일 금요일에는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평화통일 정책강연회 및 1분기 정기회의가 개최됐습니다. 배정희 민주평통 일본중부협의회장은 강연회 전 인사말을 통해 “전문가를 모셔 평화통일을 이루는 방법과 견해 등을 들으며, 함께 학습하고 생각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이므로 많은 질문과 의견교환을 해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

이번 평화통일 정책강연회에서는 동서대학교 선교복지대학원장 남일재 교수가 ‘한반도 주변정세 분석과 새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함의’를 주제로 강연했습니다. 강연회는 온라인으로 진행됐는데요. 남일재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한반도 주변정세 분석’과 ‘새 정부의 대북정책 예상 및 대외정책 과제’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남 교수는 “한미 동맹 강화 및 비핵화 원칙에 입각한 대북정책 및 한-중 관계 재설정 등이 예상된다”며, “북한을 비롯한 관계국들과의 마찰과 갈등을 최소화하는 유연한 자세로 상호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대화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강연회 후 진행된 1분기 정기회의에서는 자문위원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된 평화통일활동 안건을 공유하고 2022년도 활동계획 및 행사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일본과 조선의 외교활동에 헌신한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의 발자취
다음날인 4월 23일 토요일 오전, JR 나고야역에 25명의 자문위원 및 현지동포와 시민들이 모여 ‘평화통일 원정대~조선통신사의 발자취를 찾아서’ 스터디 투어를 다녀왔습니다. 학교에서 조선통신사에 대해 배우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요. 조선 후기인 1607년, 에도막부의 국교 회복 요청과 조선 조정의 수락으로 국교가 재개된 이후부터 1811년까지, 총 12차례 통신사가 파견됐다고 합니다.
조선통신사가 한 번 파견되면 약 300~500여 명의 인원이 한양(서울)에서 육로로 동래(부산)까지 가서 배를 타고 쓰시마 섬 (對馬島、대마도)에 도착 후, 쓰시마 번(藩)의 수행원 약400~500명과 합류하여 오사카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거기서 일본 측이 준비한 작은 배로 갈아탄 후에 강을 거슬러 교토까지 간 다음, 다시 육로로 에도(도쿄) 까지 약 3,000km에 이르는 거리를 대략 1년에 걸쳐서 다녀왔다고 하는데요. 통신사들이 유서까지 써 놓고 갈 정도로 굉장히 멀고 위험한 여정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처럼 대규모로 진행된 조선통신사의 대장정 중 일본 관서 및 중부지역에 남아있는 발자취를 찾아서, 시가현 나가하마시에 있는 동아시아 교류의 집 아메노모리 호슈암(東アジア交流ハウス雨森芳洲庵)과 아이치현 이치노미야시에 있는 이치노미야시 비사이역사민속자료관(一宮市尾西歴史民俗資料館)에 다녀왔습니다.

먼저 방문한 곳은 아메노모리 호슈암입니다. 아주 운치 있고 조용하면서도 깨끗한 아메노모리 마을 풍경이 너무 예뻐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느라 다들 분주했습니다. 아메노모리 호슈암에 도착하자 히라이 시게히코 전 관장님께서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아메노모리 마을 부흥을 위해서 힘을 쓰고 계시는 히라이 전 관장님은 조선통신사와 아메노모리 호슈에 대해 아주 쉽고 명쾌한 설명과 더불어 능숙한 아재 개그(?)를 구사하시면서 강연과 전시물 견학시간을 즐겁게 이끌어 주셨습니다.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는 일본 에도시대 중기의 유학자로 당시 조선과의 외교활동에 헌신했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일본과 조선의 교류창구였던 쓰시마 번에 유학자로 취임, 조선과의 외교 실무담당자로 임명된 후에는 동래(부산)에 3년간 어학연수를 다녀옴으로써 조선말을 배우고, 우삼동(雨森東)이라는 조선식 이름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후 조선통신사를 전담 보좌하면서 대마도부터 에도까지 왕복 여정을 함께하며, 통역 뿐 아니라 조선에서 온 유학자들과 깊은 교류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 최초의 조선어 교과서인 교린수지(交隣須知)를 집필하는 등 대활약을 펼쳤습니다. 또한, 노후에는 자택에 서당을 열어 후학을 양성하고, 3년 과정의 조선어학교를 운영해 수많은 조선어 통역관을 배출하기도 하는 등 조선과 일본 양국의 우호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교린제성(交隣提醒)에 담긴 외교 원칙이었습니다. 교린제성은 61세에 쓰시마 번주에게 바친 대조선 외교지침서인데요. “서로 속이지 말고 다투지 말고 진실로써 사귀어야 한다(互いに欺かず争わず真実を以て交わる)”는 성신지교린(誠信之交隣) 원칙을 눈여겨 보았는데요.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 민주평통 자문위원뿐 아니라 국제사회와 한일 양국의 정치가들도 귀담아 들어야 할 조언이 아닐까 싶습니다.

통신사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미노지(美濃路) 유적과 후나바시(船橋) 이야기에서 한-일 교류의 역사 되새겨
아메노모리 호슈암을 나서 요로(養老)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한 후, 이치노미야시 비사이역사민속자료관으로 향했습니다. 이 곳에는 에도시대의 중요 가도(街道, 교통상 중요한 도로) 중 하나이며 조선통신사가 거쳐갔던 ‘미노지(美濃路)’ 에 관련된 유적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미노지는 현재의 기후현 타루이(垂井)에서 아이치현 나고야(名古屋)의 아쓰타(熱田)를 잇는 가도이며, 7개의 역참(宿場, 가도 사이에 존재했던 거점)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문제는 가도 사이에 다리가 없는 하천을 건너야 하는 것이었는데요.
당시 다이묘(大名, 지방정권의 수장)를 포함한 일반인들은 나릇배를 이용했으나, 조선통신사 일행을 나룻배에 태운다는 것은 통신사절단 규모를 생각해도 무리가 있거니와, 외교적인 결례 혹은 푸대접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도막부는 조선통신사 일행이 가장 큰 하천인 키소가와(木曽川)를 건널 때, 약 300척의 선박을 900m 길이로 연결해 고정한 후, 그 위에 튼튼한 판자를 깔아서 다리처럼 만든 후나바시(船橋) 라는 임시 교량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요.

후나바시를 만드는 일에는 막대한 자금과 인력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에도 막부의 이동제한 정책상 사용 후에는 바로 철거되었기 때문에, 쇼군 (将軍、당시의 일본국왕)이 지나갈 때와 조선통신사가 지나갈 때에 한해서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한일교류 및 역사에 조예가 깊은 한기덕 전 일본중부협의회장은 “에도시대의 일본이 후나바시를 조선통신사에게 특별히 제공했다는 사실을 통해, 통신사 일행을 배려하고 국빈으로서 존중과 환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 강조했습니다.

자료관을 나와 후나바시 선착장의 비석이 있는 곳을 탐사한 후, 버스에 몸을 싣고 나고야 역으로 이동했습니다. 나고야 역에 도착해 배정희 협의회장의 간단한 맺음말을 끝으로 ‘평화통일 원정대~조선통신사의 발자취를 찾아서’ 행사가 마무리됐습니다. 1박 2일의 일정은 한일관계와 민간교류, 그리고 평화통일에 대한 여러 가지 학습과 체험을 하며 많은 것을 생각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작성 : 동우석 제20기 청년자문위원 기자(일본중부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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